[국립대병원 탐방] 김형회 부산대병원 의생명연구원장

코로나 사태 겪으며 의사과학자 중요성 실감
연구역량과 임상역량 정비례…지속적 투자 필요
지역중심 연구 활성화돼야 의료산업 균형 발전

기자명 부산=이경석 기자 (leeks@kakao.com)
김형회 부산대병원 의생명연구원장. [사진=부산대병원]
김형회 부산대병원 의생명연구원장. [사진=부산대병원]

“대학으로 치면 산학협력단이죠. 병원에서 그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게 첫 번째고요. 두 번째로는 임상 의사들의 연구 역량을 강화하는, 이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 바로 의생명연구원입니다.”

지난 2월 23일 부산대학교병원 융합의학연구동 6층 홍보실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형회 부산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장은 산학 협력과 의사과학자 양성, 이 두 가지를 의생명연구원의 핵심 역할로 꼽았다. 부산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이하 연구원)은 지난 1986년 ‘중앙임상연구소’란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 40여 년간 거듭된 연구 시설 개선과 확장, 조직 개편을 거쳐 오늘날 양적, 질적으로 발전한 연구원 모습을 갖추게 됐다. 김 원장은 지난 2016년 2월, 제18대 원장으로 취임해 8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구하는 의사’ 역할 커진다=연구원의 핵심 기능 중에서도 김 원장이 특히 관심을 쏟는 건 연구하는 의사, 즉 의사과학자 육성 분야다. 수요와 중요성에 비해 그간 육성이 부족했다는 게 그의 설명.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백신 개발 분야 등에서 의사과학자의 중요성이 부각됐지만 숫자는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실제로 한국의 한 해 의대 졸업생 3058명 중 의사과학자 지원자는 30명가량으로 졸업생의 1%가 채 안 된다. 미국의 경우 의대 졸업생의 약 4%, 매년 1700여 명이 의사과학자 길을 걷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원장은 “6년 차 미만의 젊은 의사들을 의사과학자로 육성하는 데 좀 더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라며 “이를 위해 자체 예산 20억 원가량을 들이는데 국립대 병원으로선 적은 돈이 아니다”라고 했다.

국가 의료 경쟁력 강화와 직결된 의료 산업화에 있어서도 의사과학자 역할은 절대적이다. 의료기관의 특성상 기초적인 R&D(연구 개발)에서 끝나는 게 아닌, 기초 과학의 연구 결과가 임상 과학에서 사용될 수 있는 단계까지 연계하는 중개 연구, 더 나아가 임상을 통한 실용화 연구까지 끌고 가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장 필수적인 인력이 바로 의사라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의사가 빠지면 중개 연구는 물론이고 다음 과정인 실용화 연구, 특히 임상 시험이 불가능하다”며 “이런 이유로 최근엔 공대나 타 연구기관의 R&D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의료 현장에서 필요한 부분을 기반으로 출발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란 게 잘 알려져 있다”고 했다.

병원 수익을 생각하면 연구보다는 임상에 힘을 더 써야 할 것 같지만 김 원장은 “연구 역량과 임상 역량은 정비례한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는 “특정 분야의 연구를 잘하는 의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병원의 임상 역량 또한 뛰어나다는 건 증명된 사실”이라며 “경쟁에서 살아남는 병원이 되기 위해서라도 연구 분야에 대한 투자는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남권 거점 병원…지역 혁신 주체로=수도권과 지방의 기반 격차는 아쉬운 부분이다. 소위 ‘빅5’로 불리는 병원이 몰려있는 서울·경기권과는 생태계 자체가 다르다는 것. “수도권 종합병원의 경우 재정과 인력이 풍부해 비교적 손쉽게 의사과학자를 통한 연구가 이뤄진다. 안팎의 지원도 적극적이다. 사업화까지 바라보면 격차가 더욱 크다. 사업 초기부터 바이오 기업, 의료 기업 등과의 협업이 중요한데 일단 지방에는 기업 자체가 없다. 그러다 보니 시제품 하나 만들어 보려 해도 수도권으로 가야 한다. 지역은 생태계 자체가 열악하니 병원이나 의사들도 의료 산업에 대한 관심이 덜하고, 결국 똑같은 에너지로 연구를 시작해도 수도권에 비해 힘든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김 원장은 “생태계란 게 특성상 안 하면 안 할수록 더 황폐해진다”며 “계속해서 젊은 의사과학자를 육성하고, 부산대병원이 동남권 거점 의료기관인 만큼 혁신의 주체가 돼 지역 내 타 병원과 협력하는 등 다양한 시도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부산대 산학협력단(이하 산단)과의 협력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는 “대학 산단에서도 특허를 비롯한 사업화 부분에서 의료 분야가 차지하는 영역이 굉장히 크다는 걸 알고 있다”며 “향후 병원 산단이 출범할 것을 대비해서라도 협력 관계를 잘 갖춰가야 한다”고 했다.

연구원의 대표적 사업 성과로는 부산대 기술지주회사로 설립된 ㈜에이아이인사이트의 사례를 들었다. 2018년 말 창업, 김 원장이 대표를 맡고 있는데 그간 연구 개발을 거쳐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사업화에 들어갔다. 2023년 9월부터 수익을 내기 시작해 4분기에만 8억여 원의 매출을 올렸다. 부산대병원 안과 의료진이 직접 설계에 참여한 ‘이동형 안저 카메라 기반 AI(인공 지능) 안과 질환 진단 시스템’이 대표적 사례다. 당뇨망막변증, 황반변성, 녹내장의 3대 안과 질환을 진단하는 프로그램이며, 90%를 훌쩍 뛰어넘는 판독 정확성을 자랑한다. 지난해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혁신의료기기 인증과 보건복지부 혁신의료기술 인증을 받고 상용화됐다. 현재 부산 시내 보건소 16곳을 포함해 전국 40여 개 보건소와 30여 개 의료기관이 활용하고 있다. 이밖에 심리 상담 AI 소프트웨어, 휴대용 심전도 측정기도 연구원의 연구 성과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해외 진출도 가시화됐다. 베트남 기업과 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등과도 협상이 진행 중이다.

 

◇만성 질환 급증, ‘스마트 헬스 케어’에 주목=김형회 원장은 현재 추진 중인 프로젝트도 살짝 공개했다. 김상수 부산대학교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연구팀과 함께 개발 중인데 당뇨병 환자에게는 맞춤형 예방·관리 서비스를, 의사에겐 진료에 필요한 환자의 일상 데이터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김 원장은 “시제품 단계지만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됐고 1~2년 후 상용화를 목표로 보완 중”이라며 “미국 국립보건원의 경우 당뇨 1형, 2형 외에도 더 세분된 분류 기준을 제시하는데 이런 부분까지 적용해 더 높은 수준의 맞춤형 당뇨 관리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김 원장이 주목하는 건 AI와 IoT(사물 인터넷)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헬스 케어’다. 머지않은 미래, 병원은 질병 치료와 생명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진료 중심’에서 개개인의 건강 정보를 통합하고 피드백하는, ‘연구 및 예방 중심’의 건강 관리 허브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게 그의 견해다. 현재 연구원에서 진행 중인 연구 과제의 상당 부분이 이와 관련 있다. 김 원장은 “노인 인구의 증가는 의료계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메가트렌드며 이는 곧 만성 질환의 증가를 의미한다”며 “만성 질환의 효율적 관리가 의료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슈가 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현재 병원은 급성 환자 위주로 조직이 갖춰져 있고 만성 질환자를 관리하기엔 취약한 구조라 이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면서 “병원을 찾지 않아도 일상생활 속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 헬스 케어는 세계적 추세며 관련 기술 또한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의사들이 세계적 의료 기술의 발전상을 직접 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다. 김 원장은 임상 교수들이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독일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 의료기기 전시회 메디카(MEDICA)를 관람하게 하는 등 다각도의 지원을 하고 있다.

 

◇“연구중심병원 인증, 지방에도 기회를”=정보통신기술에 대한 김 원장의 관심은 사실 연구원장을 맡기 한참 전부터 시작됐다. 진단검사학이 전공인 그는 2004년 엉뚱하게도 의료정보학 박사 과정을 경북대학교에서 밟았다. 의사가 의료정보학을 공부하는 게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김 원장은 “지도 교수님 권유로 공부하게 됐고 개인적으로도 이 분야가 앞으로 굉장히 중요해질 거라고, 여러 IT 시스템이 병원에 들어오는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며 “덕분에 이 분야에 발을 디디게 됐고 이공계와 의료계 사이를 조율하고 소통하는 중간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더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김 원장은 정부의 ‘연구중심병원’ 인증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연구중심병원이 지정제에서 인증제로 바뀌면서 기대치를 높이고는 있지만, 기존 지정된 병원과 동일한 인증 기준이 적용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10년 이상 준비해 온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을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 더욱이 열악한 지방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평가 기준이 못내 아쉽다고 했다. 김 원장은 “사업을 집행하는 입장에선 수준을 낮출 수는 없다는 걸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방 병원도 탄력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며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연구가 활성화될 때 주변 타 병원과 기업도 성장하고 의료 산업을 통해 전국이 균형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김 원장은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부산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장과 임상시험센터장, ㈜에이아이인사이트 대표직을 겸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