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욱의 과학 세상] 노화 특집 ②
노화 논쟁에 담긴 이데올로기

장수과학파

노화 속도 늦출 메커니즘 찾는게 목표
내인성 질병 지연시켜 수명 연장 가능

노인의학파

노화는 모든 사람이 겪는 매우 정상적 과정
질병으로 규정 땐 연령 차별 악화시킬 것

기자명 조현욱 논설주간 (poemloveyou@hanmail.net)
장수 과학은 노화를 고칠 수 있는 질병으로 규정한다. 실제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에서 그렇게 될 뻔했다. [사진=게티이미지]
장수 과학은 노화를 고칠 수 있는 질병으로 규정한다. 실제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에서 그렇게 될 뻔했다. [사진=게티이미지]

“노화는 질병인가?”

지난 해 7월 영국의 의학저널 [랜싯 건강한 장수 Lancet Healthy Longevity]에 실린 사설의 제목이다. 노화를 질병으로 분류할 것인가의 여부는 지금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이슈다. 일단 지난해 1월 시행된 국제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CD-11)’을 보자. WHO는 이 개정판에 “노령 old age”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안을 제시했다. 다른 질병 분류에 포함되지 않은 증상, 징후, 임상 소견을 뭉뚱그린 용어다. 하지만 국제 임사의사집단과 공식 협의 과정에서 우려가 제기됐다. 노인들의 실생활에 피해를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WHO는 “노령”이라는 용어를 철회하고 “노화와 관련된, 원래 타고난 능력의 쇠퇴 ageing associated decline in intrinsic capacity”로 대체했다. 진단 코드명 MG2A가 이에 해당한다. 10차 개정판에서 이에 해당하는 코드는 R54, 명칭은 ‘노쇠 senility’였다. 어감이 나쁜 탓에 실제로는 널리 적용되지 못했다.)

적어도 ICD-11에서는 이 문제가 해결됐다.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언어적 정확성을 둘러싼 학문적 논쟁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장수 과학과 노인의학 사이에 내재된 훨씬 더 크고 본질적인 이념적 갈등이 감춰져 있다. 앞서 글머리에서 언급한 랜싯 사설의 지적이다. 그 내용을 따라가 보자. 노화를 질병 과정으로 분류하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나이가 들면 여러 가지 비전염성 질병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진다. 또한 타고난 생리적 복원력과 외부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회복력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노화를 병리학적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면, 연구자들은 노화 자체의 병태생리학적 메커니즘을 살펴볼 수 있다. 목표는 노화 속도를 늦추는 데 표적으로 삼을만한 메커니즘을 찾는 것이다. 이는 노화 과정 자체가 여러 종에 걸친 생물의 유전자 속에 코딩돼 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전임상 데이터에 따르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렇다. 놀랍게도 전임상 노화 연구에서 관심을 갖거나 주목할 만한 경로 중 상당수가 암과 당뇨병과 같은 노화 관련 질병의 발병과도 관련이 있다.

따라서 노화 경로를 표적으로 삼으면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여러 질병의 근원을 공격할 수 있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면 건강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치명적일 수 있는 내인성 질병의 발병을 제거하거나 지연시킴으로써 수명 자체를 연장할 수 있을 것으로 이들은 믿는다. 게다가 이미 다른 질병에 사용되는 기존 약물의 용도를 변경하여 건강한 사람의 건강 수명을 개선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노화와 질병 경로가 상호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을 바탕으로 한 시도다. 예를 들어 ‘TAME 시험(Targeting Aging with Metformin: 노화를 표적으로 하는 메트포르민 복용)이 그렇다. 이미 당뇨병에 사용하도록 허가되어 안전한 것으로 밝혀진 메트포르민이 노화 관련 질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평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노화를 질병으로 규정하면 노화를 대용물이 아니라 명시적 최종 표적으로 하는 임상시험의 가능성이 열린다. (다만 타고난 노화 속도를 측정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잠재적 이점이 그렇게 큰데도 노화를 질병으로 보는 것이 임상의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노화는 일부만 경험하는 질병 상태와 달리 모든 사람이 겪는 정상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둘째, 늙는다는 것이 자동적으로 신체가 악화된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신체적 노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른데다 많은 변화가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가소성이 있는 과정이다. 생활 습관을 좋은 쪽으로 바꾸면 좋은 효과가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햇수로 세는 나이만으로는 질병 위험을 예측하기 어렵다. 셋째, 노화를 질병으로 규정하는 것은 연령과 관련한 생각과 감정 및 행태의 차별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인간의 노화 속도나 질병 진행을 늦추는 임상적으로 입증된 개입은 없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전임상 결과와 노화방지 스타트업에 대한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물론 장수 과학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 연구가 스스로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의학의 모습을 바꿀 수도 있다. 임상의들은 노화와 관련된 변화를 전문 분야별로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총체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더 나은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령화 인구가 필요로 하는 장수 의학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두 분야가 서로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해야 한다.

장수 의학이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분쟁이 아닌 협력이 필요하다.

(DOI : https://doi.org/10.1016/S2666-7568(22)00154-4)